해움한의원이 생기기까지, 대표원장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해움한의원 대표원장 박재은입니다.
오늘은 제가 진료할 때 어떤 마음으로 환자분들을 마주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생각으로 이 한의원을 운영해오고 있는지에 대해
조금 솔직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이 많이 담겨 있어 쑥스럽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는데요.
그래도 환자분들이 한의학, 그리고 저라는 사람을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에 글을 써내려가 봅니다.
이 글은 ‘특별함’을 보여주기 위한 글이라기보다는,
제가 어떤 마음으로 진료실에 앉아 있는지를 담담하게 기록한 글입니다.
조금만 시간을 내어 끝까지 읽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 해움한의원 박재은 원장 약력



해움한의원 박재은 한의사

얼마 전 찾아오신 환자분이 하신 말입니다.
“이 병으로 거의 10년을 고생했는데, 검사에서는 늘 이상이 없다고만 들었어요.
아는 분이 여기에서 좋아졌다고 해서 전라도 해남에서 여기까지 KTX 타고 왔습니다.”
어쩌다 보니 저희 한의원에는 이런 분들이 자주 찾아오십니다.
소위 난치, 불치병이라고 하죠. 검사를 해도 뚜렷한 이상이 없고, 치료법은 커녕 병명조차 명확하지 않은 증상들 말입니다.
3개월 동안 이유 없이 10kg가 빠진 환자, 이런 분들은 흔하고요.
1년 내내 자궁출혈이 멎지 않아 자궁을 들어내야 하나 고민이신 분, 숨 쉴 때마다 명치부터 옆구리까지 원인 모를 통증으로 호흡이 곤란한 분, 눈물이 날 정도로 혓바닥이 아프고 가슴에 열이 돌아다녀 잠을 못 자는 분들까지..
공통점이 있다면,
이미 여러 병원을 거쳤고 “이상 없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는 점입니다.
이런 분들이 어디서 어떻게 알았는지,
소개에 소개를 통해 해움한의원 문을 열고 들어오십니다.
걱정하시는 것보다 의외로 치료가 어렵지 않습니다.
코로나 후유증의 경우도, 코로나 후유증이라는 말조차 생기기 전부터 진료를 시작해서, 다른 병원에서 손대지 못하는 수많은 환자들이 치료되었고요.
과민대장증후군이나 이명처럼 그래도 이름은 있는 증상들부터, 이름조차 없는 증상들까지... 많은 분들이 반신반의하며 들어왔다가 치료되어 웃으면서 나가셨습니다.
아무도 이유를 모르는 이상한 병들을 고치는 한의원.
대체 왜 이런 환자들이 모이게 되었을까요?
그 배경에는 제 개인적인 시행착오가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해움한의원에서 제게 진료를 받으신 분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입니다.
"원장님, 정말 정확하시네요."
"어떻게 아셨어요? 진맥 보면 그런 것도 나와요?"
"소문 듣고 안 믿었는데 믿을 수밖에 없네요"
부끄러운 칭찬이라 웃으며 넘기지만, 사실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것이 감사하면서도 때로는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결과에 대한 책임감도 느끼게 되고요.
사실 처음부터 이런 말을 들었던 것은 아니고요.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제가 한의사로서 눈을 뜨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요.
한의대 시절 저는 비교적 성실한 학생이었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해서 장학금 받으며 대학을 다녔고요. 매일 제 몸에 60개의 침을 놓으며 1.2L 페트병을 가득 채우는 연습도 하고, 의료봉사 활동도 꾸준히 하며 환자를 볼 준비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졸업 후 진료실에 앉았을 때, 정말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언제 나아요?" "나을 수 있는 거예요?"라는 환자의 질문 앞에서 저는 자주 말문이 막혔습니다.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시기에 우울감과 무력감이 얼마나 심했는지, 환자를 만나는 것이 싫고 무서웠습니다.
환자를 피해 진료실 밖으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내가 한의사를 해도 될지 스스로에게 묻기도 정말 많이 물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로 네팔로 떠나는 의료봉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거창한 뜻이 있어서 그런건 아니고요, 어디로든지 떠나고 싶었어요.
직장을 그만두고 충동적으로 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결정이, 이후 한의사로서 제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게 됩니다.

네팔에서의 의료봉사는 제 생각보다 훨씬 무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즐겁고 재미있는 일들을 상상했는데, 사실은 훨씬 더 큰 책임감을 필요로 했어요.
몇 개월이라는 긴 기간의 진료봉사다 보니, 한의사 두 명의 체력적 한계로 인원 제한을 두었는데요. 선착순으로 운영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문제가 뭐냐면,
전날 밤부터 진료소 앞에서 기다리며 노숙을 합니다.
맨발에 쪼리로 손전등을 들고 어두운 산길을 걸어온 환자들이
오는데 8시간 밖에 안 걸렸다며 웃으면서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찾아온 환자들이
아침에 진료를 시작하면 100명 넘게 줄을 서있었습니다.
미치겠더라고요.



그 때 저희는 한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오늘 만난 환자는 오늘 반드시 최대한 많이 고쳐서 돌려보내자.
오늘이 이분들은 마지막 진료라고 생각하자.
아니 다시 찾아오게 만들지 말자.
우물쭈물 망설일 시간이 없었습니다.
찾아온 모든 환자들을 치료해서 바로 즉시 호전시키고, 나았는지 일일이 확인해서 보내고..
나라는 의사를 보러 맨발로 산길을 6시간 이상 헤치고 온 사람들이 당장 문 앞에 줄을 서있는데, 어떻게 치료할지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모르는 부분은 다른 한의사 선생님에게 물어가면서, 정말 처절하게 모든 힘을 다해 진료했습니다. 그저 어떻게든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신기하게도 이때 치료 실력이 정말 많이 늘었습니다.
어떻게든 책임지려는 마음에 절박해지다 보니까 길이 열리더라고요.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저는 똑같이 진료했습니다.
환자가 한의원에 찾아오면 나을 때까지 집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30분이고 1시간이고 계속 붙잡고, 나아지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그 날의 진료가 끝납니다.
침 치료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일 년에 만 건 이상 한약을 처방했습니다.
만 명이 넘는 모든 환자에게 같은 질문을 하고 같은 검사를 반복하며 데이터를 모았습니다.
처방 공부를 위해 20만 명을 차트 리뷰하고 이들의 데이터화, 통계에만 2년을 매달렸습니다.
>>> 해움한의원이 어려운 병들을 고칠 수 있는 이유
https://www.haeumclinic.com/column/223?from=series&groupId=1
그렇게 시간이 쌓이자, 환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처방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부터 저에게 용한 의사라는 소문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일요일 공휴일 없는 진료는 기본에
환자만 많이 볼 수 있다면 산골 오지로 들어가 일하기도 하고
어쩌다 쉬는 날이 생기면 KTX를 타고 대학원에 초음파 등을 배우러 다니며
개인생활을 버리고 쉬는 날 없이 진료와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묻는 한의사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하려면, 제 어린 시절 꿈을 얘기해야 할 것 같은데요.
부끄럽지만 저는 세계 평화가 꿈이었습니다.
좀 낯설죠? 어릴 때부터 제 꿈을 말하면, 언제나 반응이 썩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의사라는 길을 선택한 것도, 내가 어떤 일을 해야 세상에 제일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 끝의 선택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까지 나름 진심이었거든요.
아마 제가 초보 한의사 시절 유난히 우울해한 이유도
제 실력이 다른 사람을 돕기는커녕, 해를 끼치는 것 같아서 마음이 괴로웠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이상하고 어려운 병들을 치료하는 한의원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훨씬 어려운 길이지만, 저까지 지나쳐버리면 이분들은 다시 병원을 전전하며 '이상 없다'는 말만 듣고 자신이 왜 아픈지 원인도 모른 채 오래도록 고생할 테니까요.
지금 해움한의원을 찾아오시는 환자분들은 이런 분들입니다.
"못 고치는 병이라고 생각했어요.
원장님 감사합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제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를 다시 확인하고 있습니다.
저는 살면서 남을 도우려다 제가 더 큰 도움을 받은 경험들을 수없이 했습니다.
네팔에서의 경험도, 지금 매일같이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순간들도 그렇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가장 많이 성장했던 순간들은
누군가를 돕고자 애쓰던 시기였습니다.
이 시간들을 통해 저는 남을 돕는 것은 결국 나를 돕는 일이라는걸 뼛속 깊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어디 도움될 곳 없나 눈에 불을 켜고 다니는 중인데요.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중에
듣도보도 못한 증상으로 오래 고민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당신을 돕고 싶어하는 제 마음이 전달되었으면 좋겠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