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움한의원이 어려운 병들을 고칠 수 있는 이유
“맥만 봤는데 어떻게 그렇게 다 아세요?”
용하다는 한의사들은
진맥 한 번으로 병은 물론이고
그 사람의 성격과 고민까지 짚어낸다고 합니다.
그래서 문전성시를 이룬다는데,
정말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오늘은 같은 한의사 입장에서
그런 거짓말 같은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글을 한 편 써보려고 합니다.


제가 임상연차가 지금보다 짧을 때 얘기입니다.
당시 정말 유명한 한의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저는 그 중에서도 환자가 많이 몰리는 원장이었습니다.
그 비결은 신통한 진맥이었습니다. 환자가 말하지 않아도 가지고 있는 병과 성격의 특징, 어떤 걸로 힘들어하고 고민하는지, 옆에 있는 남편이랑 주로 어떤걸로 싸우는지까지 다 읊어줄 수 있었거든요.
'원장님 정말 실례지만.. 혹시 신기 있으세요?'
'너무 용해서 점집에 온 줄 알았어요.'
'(옆사람을 찌르며) 너가 미리 얘기해준거 아니야?'

하루에 환자를 50명 본다면
그 중 15명은 너무 신기하다 놀라워했고
또다른 15명은 자기의 인생사를 털어놓으며 울었습니다.
가끔 그렇지 않은 날에는 '오늘 컨디션이 안 좋네..' 하고
굉장히 찜찜하게 집에 돌아갔습니다.
때로는 저 스스로도 헷갈리곤 했습니다.
'어? 나 신기 있나? 내가 이걸 어떻게 알지?'
제가 이게 신통력이 아니라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한 '직관'이자 '추리력'이라는걸 알게된 건 조금 이후의 일입니다.

제게 이런 신묘한 능력이 생기게 된 것에는 사연이 있는데요.
원래 저는 졸업 후 대학원을 다니며 논문을 쓰고 있었고, 논문이나 데이터가 없으면 믿지 않는 '과학적 사고'로 무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한의학에는 별에별 희한한 진료 방식이 많았습니다.


저는 한의학에 진심으로 화가 났습니다.
"내가 이거 다 직접 확인해본다..."
(안 믿어가 아니라 확인해본다가 과학자 정신입니다...)
>>> 진실에 대한 탐구
https://blog.naver.com/ssbgm/223249061441
이 과학도로서의 순수한 분노에 오타쿠 기질까지 발휘되면서
일반인이라면 하지 않을 미친 짓을 제가 해버립니다.
혼자서 7년 동안 20만명의 차트리뷰 및 통계를 합니다.
어떻게보면 스스로에게 인공지능처럼 데이터 학습을 시켜버린거죠.
추가로 그렇게 쌓은 데이터를 임상에서 몇만명의 환자들을 통해 직접 검증하고
텍스트와 실제 사례를 연결까지 짓고 나니...
환자가 문을 열고 자리에 앉기도 전에
얼굴만 봐도 처방을 아는 경지에 이르렀던 겁니다.
(사실 진맥까지도 필요 없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질병이 아니라 각자의 몸에 맞춰 치료를 하는데요.
이 사람이 어떤 생체적 특징을 가졌는지에 따라
똑같은 병이더라도 원인이 다르고 치료가 달라집니다.
같은 비염을 치료하는데 어떤 사람은 체온을 올리고, 어떤 사람은 오히려 체온을 낮추는 치료를 하는거죠.
(이를 보고 오늘날 생물학자들은 개체특이성이라고 합니다.)

© weekendtripcreator, 출처 Unsplash
그러다보니 병보다도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파악하지 못하면
병의 원인도 알기 어렵고 치료도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한의사들은 죽기살기로 이 사람의 개체특이성에 대한
아주 작은 단서라도 얻고자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소화나 대변 소변 수면은 어떤지, 생김새나 성격이 어떤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질병과 전혀 상관 없어보이는 아주 작은 단서까지도 전부 수집하는겁니다.
(혈액검사나 유전자검사키트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여러 방면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이렇게 쌓인 정보들이 만들어낸 패턴을 가지고 한의사들은 '변증'을 합니다.
그리고 저 역시 배운대로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데이터를 수집했습니다.
복용 중인 약, 수술력 같은 병과 관련된 것과
서있는 자세, 혓바닥 모양 병과 상관 없는 것들
혈압, 맥박수, BMI 같은 수치화할 수 있는 것과
얼굴, 체형, 목소리 같이 수치화할 수 없는 것들
손목을 잡을 때의 감각처럼 제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부분과
성격, 좋아하는 음식 같은 직접 확인할 수 없는 부분들까지.
정말 모든 데이터를요.

"몸이 안 좋아지면 주로 설사? 변비?"
"커피를 드시면 밤에 못 주무시나요?"
"어릴때 얌전하셨어요, 까불까불하셨어요?"
"누가 나한테 진짜 못되게 했다, 그러면 다시는 안 본다?"
이 과정을 정말로 매일 오는 모든 환자들에게 반복했습니다.
한 사람당 몇 백개의 질문을 빠짐 없이 똑같이 반복한건데,
사실 말도 안 되는 겁니다. 제 정신은 아니었던거죠.
이 사람의 개체특이성, 그러니까 치료법을 알려고 시작했던 일인데..
이걸 수만명을 하고 나니, 원래 목적이었던 것들 말고도
너무 많은 것들을 알게 되어버렸습니다.
'이 사람은 집에서 맨날 누워만 있겠네..'
'한고집 하겠구만.. 혈압은 150 이상으로 높겠고..'
'얌전해보여도 사실 집에서는 남편을 달달 볶겠네.'

저는 제가 이런 경험들을 했기 때문에,
일견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 진실로서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내가 모르는 영역일 뿐, 무조건 '말도 안 돼 사기야!'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거죠.
마지막으로 하나 덧붙이자면
신기하게도, 이렇게 알아낸 부분들이 의외로 또 진료에 도움이 됩니다.
인간이라는 건 단순한 세포의 집합이 아니거든요.
병이 아니라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질병에서 나아가 사람의 마음, 때로는 인생까지 고치는 기적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